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스페인 전쟁 (문단 편집) === 1648년 이전 === 1635년 5월 프랑스군은 레아빈스에서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있던 소규모의 스페인군을 격파하였고, 이에 수적으로 열세였던 스페인군은 루벤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프랑스군 내의 탈영병으로 프랑스군이 크게 감소했고, 네덜란드가 더 이상의 군사 행동을 반대하면서 더 이상의 진격은 멈추었다. 다만 네덜란드는 해군을 이용해 스페인의 무역을 봉쇄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었다. 한편, 1636년 스페인군은 프랑스 북부 코르비에 상륙하였고, 이에 프랑스는 크게 당황하여 잠시동안 파리가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코르비에 상륙한 스페인군은 보급품이 부족했고, 결국 스페인군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군은 1635년부터 1639년까지 라인란트에서 일련의 승리들을 거두었고, 라인강 일대의 상당한 도시들이 프랑스의 손에 들어왔다. 이로 인해 스페인군의 도로가 차단되면서 스페인은 네덜란드 해군이 장악하고 있던 플랑드르 앞바다로 군대를 보내야만 했다. 또한 프랑스군은 스페인의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영토에도 공격을 가하였다. 스페인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세금 증가로 인해 1630년대부터 시위가 발생했고, 1640년에는 포르투갈과 카탈루냐에서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났으며, 1641년, 카탈루냐 법원은 [[루이 13세]]를 카탈루냐 공작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1643년 로크루아 전투에서 스페인군은 대패했고, 1648년 렌스 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스페인군을 수차례 격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피에몬테 내전(1639 ~ 1642)으로 인한 북이탈리아의 혼란과 물자 부족으로 인해 전투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스페인군은 1647년에 [[나폴리]]를 탈환하며 남이탈리아를 확고히 장악하였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황제 [[페르디난트 3세]]를 포함한 주요국들이 평화 협정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 협정 조건의 개선을 원하던 스페인의 [[펠리페 4세]]로 인해 프랑스와 스페인의 전쟁은 계속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